정말, 강렬한 인상을 받은 첫 만남은 그렇게 많이 경험하지는 못했습니다. 굳이 예를 들자
면, 신입생 환영회의 술자리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너 나랑 비슷한 녀석인
거야?"라고 물어온,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던, 그런 멋진 선배..... 였는데 지금
은 밥먹듯이 "혜진아~~~~♡"하고 어리광 모드 발동에 때때로 과하게 어리광 모드로 가다가
결국 머리나 복부나 뺨 등등을 가격당한 연후에 "잘못했어요" 모드로 나가는, 완전히 스타
일 구겨버린 세이가 있을 거고요..... 아아, 하지만 언젠가 잘못 연타한 따귀 때리기에 얼굴
이 엉망이 된 이후로 패는 짓은 안하고 있습니다. 저는 폭력소녀가 아니예요..... 게다가 운
동으로 단련되거나 하는 것은 병아리 눈물만큼도 없는 비리비리한 여자한테 맞아서 죽을
남자는 없다는 것도 아니까요. 하여간..... 이 이야기가 나오면 혹자는 미래의 가정폭력이
어쩌고 운운(두들겨 맞는 남편이 어쩌고 어째....?)하기도 합니다만..... 그럴 리 없으니 넘
어가죠. ^^
정말 잊을 수 없는 만남이 있었습니다. 통신상에서만 만나던 사람을 모 서점에서 만나기로
하고 약속장소인 서점에 좀 일찍 도착한 바람에 구석에서 열심히 과학동아를 보고 있다가
..... 1층 문 앞에 서 있다고 해서 내려갔을 때. 저는 회색의 뿔모자(-_-)를 쓰고 있던 하안사
녀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뭐, 뿔모자라고는 하지만..... 그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딜버트에 나오는 상관의 헤어스타일 같이 생긴 것이기는 하고요. ^^;;;;
하여간 눈이 묘하게 초롱초롱 한 그녀와 알게 된 지도 2년이 좀 넘어 갑니다. 온라인에서
만난지는 4년이 넘었습니다만. 만날 때 마다, 그녀는 저를 있는 그대로 매혹시켜 버립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한번 정하면 웬만하면 변하지 않는, 그리고 그 좋아하는 것을 위해
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녀의 무한파워는 언제나 매혹의 대상입니다. 워낙 세
상은 넓고 관심 가질 것은 많은데다가 좋아하는 것도 많아서, 한 가지에 목을 매지 못하고
여기저기 문어발식으로 수두룩하니 영역만 넓혀 놓고 있으면서는, 그러면서도 늘, 언젠가
정말 좋아하는 것, 이걸 하다 죽어도 좋다는 생각이 한 순간이라도 드는 일을 찾기 위해서
탐색전을 벌이는 중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저와는 좀 다르죠. 물론 일장일단이 있는 일입니
다. 하지만, 사람은 자기가 잃어버릴 것 같은 것, 혹은 자기가 갖고 있지 않은 것을 가진 사
람을 보면 더 설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에 쓴 글에서도 이야기 했었죠. 자기 의지로 살아가기.
"괴물을 죽이는 것은 언제나 인간이다."
흡혈귀 아카드가, 사람을 찢어발기며 하는 그 말은 묘하게 가슴에 꽂힙니다. 그는 보통의
사람을 "휴먼"이라고 부르며 멸시합니다. 워낙에 천년묵은 흡혈귀 답게 자긍심이 하늘을
찌르니까요. 긍지에 있어서는 인테그라 사마도 차마 못 따라 가실 수도 있습니다. (일단 살
아온 날이 다르지 않습니까. 누구는 23년, 누구는 그야말로 천년묵은 흡혈귀.) 그런 그가 말
하는, 자기와 같은 괴물을 죽일 수 있는 "인간"이란 무엇일까요. 남의 지시대로 전투에 뛰
어드는 전투요원들이 아닌, 자신의 의지로 삶을 선택하는 사람은 아닐까요. 자신의 의지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만이, "인간"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하는 한 마디였
습니다.
레 마누아, 샤르휘나, 오스칼, 무휼, 등등등등......최근에는 인테그라까지.
주로 여자 캐릭터이기는 하지만 드물게 남자도 있는 하여간 그런 인간들에게..... 다시 매
혹당하는 것은..... 이렇게 지내다가 그냥 그대로 언젠가는 물에 물 탄듯 술에 술 탄듯 나라
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그냥 사라져 버릴까봐. 자기 의지로, 자기 판단으로, 그렇게 물러서
지 않고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아파 보이지만..... 아름다워서. 자기답게 살아갈 수없는
한 이미 그 사람은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생각이들어서. 그래서 그런 것 같습니
다...... 자기의 의지로 살아간다는 것은, 아름답지만 상처받기 쉬운 것, 그리고 경우에 따
라서는 타협점을 놓치고 세상과 대립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 것.
언젠가 정말로, 생애를 걸고 하고 싶은, 어쩌면 해야 하는 일이 생겼을 때..... 그때 현실이
주는 고정된 수입이나, 조용한 일상..... 그런 것들의 붕괴를(엄마가 뚜들겨 말리는 것을 포
함해서.....) 두려워하지 않고, 원하는 길로 갈 수 있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글쎄요..... 그녀를 모르시는 분들은 분명히 과대평가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제
가 알고 있는 한 그녀라면 그렇게 행동하겠지요, 분명히. 자기가 사랑하는 일을 위해서라
면 자기 자신을 잊어 버리기까지 하는 그녀. 자기 의지로 움직이려고 노력하며, 실제로도
그러한 그녀. 그것은 어떻게 보면 집착이나 광기에 가까운 것일수도 있지만,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압니다. 그것은 제가 만날 수 있는 운 좋은 작은 불꽃 중 하
나라는 것도요.
그녀에게 매혹될 수록, 저는 기도합니다. 아니,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저는 한두 가지에 목매서..... 그렇게 안 삽니다. 세상에는 흥미로운 것이 너무나 많고
, 그것들을 추리고 추린다는 것도 제 성격상으로는 정신없는 일이 되어 버립니다. 다양한
존재에 호기심을 갖고, 그냥 바람이 불어오듯이 그 존재에 대한 매혹에 잠겨 지낼 뿐입니
다.
하지만 그것에 앞서, 현실적인 욕망이라는 것은 늘 발목을 사로잡는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제가 정말로 이 일을 하다가 쓰러져 죽어도 좋다는 생각이 드는 일을 만났을 때,
아니, 늘 그 생각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단 한 순간이라도 그렇게 느끼고, 그 길을 가기
로 결정했다면 저는 그렇게 합니다. 하지만, 그리 되기 전에 일상의 안온함에 너무 깊이 잠
겨들어, 현실을 떨치고 일어나 내 의지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을까. 그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서라도, 기도해 봐야 받아 주실 분도 없는 무신론자인 주제에 밤마다 기도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내 의지가, 내 열정이 명하는 대로 살 수 있게 하소서.
진실로 내가 생애를 걸고 가야 할 길을 만났을 때, 안락을 버리고라도 그 길로 갈 용기가
퇴색되는 일은 없게 하소서.
그렇게라도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그만큼.... 저라는 녀석, 유혹에 약하니까. 그
걸 알고있으니까요. 그 유혹 중 제일 두렵고도 크며, 강렬한 것은, 평온하고 조용하고 따뜻
한 안락이라는 것도 알고 있으니까요. 어느날 갑자기 인도나 티벳으로 날라 도를 닦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그것이 정말 내 갈 길이라면 아무리 미친 짓이라고 보여도 그 길
로 갈 수 있기를 진정으로 바랍니다.
ps) 하안사녀란 "바람의 나라"에 나오는 청룡의 이름입니다. 비류수에 살고 있으며, 아주 섹
시한 인상의 여자 청룔이지요. ^^;;;; 여기서는 김진 선생님의 광팬, 아니, 김진교 교주이며
현재 모 여대 휴학중인 한 모 양을 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