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문학경기장 옆에 붙어 있는 문학 야구장에서 세이와 저는 태극기를 들고 날
뛰다 왔습니다. ^^ 중간중간, "꺄아아아아아악~~~!!!!! 이천수오빠~~~!!!!" 하기도 하고, 태극기
를 얼마나 흔들었는지 지금은 왼쪽 어깨가 결릴 지경이랍니다. ^^* 하여간, 그동안 TV에서
볼 때에는 "어이구, 인간 한번 징그럽게 많네...."라던가, "힘도 좋네. 세상에 아직도 저러고
있다니." 라는 반응을 보였던 저였지만, 실제로 그런 열광의 도가니 속에 서 있을 때에는
저 역시 다른 사람과 다를 것 없이 미쳐 날뛰고 있었습니다. 물론 뭐..... 한 가지 다른 것은
있었던 것이.... 빨간 티셔츠가 아니라 완전 보색인 어두운 청록색의, 수퍼유저 티셔츠를
입고 날뛰었다는 것이 차이이겠지만, 대신 빨간 두건을 쓰고 놀았으니까 특별히 튀지는 않
았을 거예요. ^^*
일부에서는 한국 축구 안 하는 날은 심심해서 미치려고 하는 축구 증후군이 돌고 있다고는
하는데..... 그런 것을 걱정하시는 어른들도 계시죠. 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는 걸요. 게다
가 그런 것은 지금의 어른들인 기성세대의 책임도 일부 있다고 생각해요.
놀이문화, 축제문화의 부재.....
대학교 축제? 낮에 좀 나가 놀아볼까 해도 그때 맞춰 수업과 숙제는 물론 쪽지시험까지 내
놓으며 못 놀게 하는 교수님들, 그리고 일종의 강제성으로 어린 후배들을 데리고 축제를
꾸려나간다는 것이 알코올이 반인 학생회, 순수하게 놀고 즐기기에는 부담스러운 여러가
지 요소. 그것이 우리가 젊어서 즐길 수 있는 축제라는 놈의 대부분이죠.
기껏 문화의 거리니 문화의 날이니 하면서 축제를 만든다고는 해도, 작위적인 모습, 상업
적인 물결, 혹은 행정편의적으로 눈가리고 아웅 하면서, 실제 놀 수 있는 무엇은 없이 외견
만 삐까번쩍한 그런 "만들어진"축제.
물론, 즐겁게 술 마시고 춤추고 놀 수 있는 곳이야 찾아보면 있겠지요. 하지만, 순수히 즐
거움과 기쁨으로 다같이 어울릴 수 있는, 세대를 넘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그런 자발적인 축제라는 것을 지금까지 경험해 보신 분 계시나요? 이념이나 그런
골치아픈 이야기 없이, 공무원의 실적 올리기용이나 혹은 술판 벌어지는 모습 없이, 그냥
즐거워 기뻐하면서 그 즐거움과 젊음을 발산하기만 하면 되는 그런 축제를 경험해 보신 분
이 있나요?
지금 다들 그렇게 미쳐 돌아가는 것 처럼 보이게 열광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
다. 물론 시끄럽죠, 어찌 되었건 서점에는 파리가 날리고 각종 학원들도 장사가 안 되며 산
업 현장에도 공백이 생기는 것, 대학교와 고등학교, 중학교의 수업이나 시험 일정이 당겨
지거나 늦춰지고 각종 폐해가 속출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문제가 많다고 걱정하
는 어른들은 점점 늘어나겠지요. 어쩌면 이 월드컵이 끝나자 마자 경제적인 피해 효과에
대한 이야기가 대대적으로 언론에서 터져나오며 "우리모두 정신차려 선진조국 이룩하세~"
운운 하면서, 자료 화면으로 시청 앞에, 거리에 가득한 붉은 물결을 보여 줄 지도 모르지요
. 너희는 저렇게 열정적이고 협동심 강한, 똘똘 뭉치는 민족이니까 뭔가 보여줄 수 있다.
경제 발전과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큰 관계까지는 없는 축구 시합을 보여주며 너희는
저렇게 한다면 하는 민족이다, 너희는 해낼 수 있다. 그럴 것은 아마도 뻔할 뻔자고요. (전
부터 궁금했던 건데, 스포츠 잘하는 것과 경제 발전이 거시적으로는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겁니까? 아시는 분 있으면 리플좀 달아 주세요.)
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그렇게 기쁨을 자연스레 방출하는 것을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일제 시대 이
후로 누가 "감히" 그래 볼 수나 있었겠습니까. 즐거움을 표현하는 것 조차 죄스러웠다는,
저는 알 수 없는 시대가 바로 제가 태어나기 직전이었다 하며, 노는 것 역시 죄악처럼 여겨
졌던 시대도 있었다고 하지요. 각종 어수선한 일들로 웃음조차 마음대로 웃지 못했다는 어
른들 이야기는 또 무엇이던가요. 그 시절에 사춘기와 청춘을 보낸 분들은 또 과연 놀이문
화라는 것을 느낄 수 있으셨던가요. "옳은 일"과 "민주주의", 그리고 열사의 죽음이 얼룩진
캠퍼스에 제대로 축제가 있었을 거라는 생각은, 상상력이 그렇게 뛰어나지 않은 저도 상상
이 가는 노릇이니 넘어가지요.
그래서, 지금은 괜찮냐고요?
젠장. 모든 놀이 문화라는 것에 이유를 붙여 나가며, 유래가 뭐가 되었건 아이들 쎄쎄쎄 하
는 것도 일본 문화의 잔재라며 비난하는 족속들이 불쑥불쑥 튀어 나오고, 몇 안되는 놀이
문화는 철저하게 아이들의 공부, 학업, 예정되어야 하는 미래를 대신하여 사라져간 데다가
, 놀이터는 썰렁, 협동놀이 같은 것을 하면서도 내 아이가 튀어야 한다는 엄마들로 시작한
망가진 놀이문화는 공부 기계로 자라는 일부 아이들과 기껏해야 술과 담배 혹은 그 밖의,
말초적인 자극으로 빠지는 아이들, 그리고 컴게임과 TV 등에 빠지는 대부분의 아이들로 나
뉘며 역시 비틀어지다가...... 그 애들이 대학에 가거들랑, 아마도 사회 문제니 유행 지난
이념이니 썩어 문드러진 정부니 사회니 마국놈들이 어쩌니 하는 요소들이 고명으로 얹어
진, 그나마도 맛있게 먹게 내버려 두지도 않는, 엄청난 비중의 알코올 성분을 자랑하는 축
제 따위 4번 거치고 졸업하는 것이며..... 나이 들어도 제대로 한번 놀아 보지 못하고..... 아
저씨가 되면 또 경우에 따라 술과 여자 등에 푹푹 젖으면서 그게 즐거움의 발산인 줄 알고
지내다가, 그렇게 재미없게 끝나겠지요. 아마도 틀림없이.
이미, 아마도 놀이 문화의 즐거움을 아셨을 분들은 모두 돌아가시고도 한참의 시절이 지나
간 지금, 월드컵은 우리에게 내재된 축제의 열정을 되살려주는 계기였습니다. 그리고 아마
도, 다시 이렇게 걸판지게 놀아 보기 쉽지 않으리라는, 우리 사회에서 자기도 모르게 습득
한 확신이 우리를 점점 더 이 축제 속에 몰입하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순수한 즐거움으로 1년에 1주일을 뜨겁게 보내고,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면, 우리가 그렇게 살아올 수 있었다면 우리는 또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다행히
도 우리는 처음으로 만난 그 열정의 도가니에서도 정신을 잃어버리지는 않았습니다. 그 아
수라장 같은 거리에서도 우리는 최소한의 청소를 할 수 있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면
에 보이는 선수들을 향해 아낌없는 응원을 쏟아부었습니다. 아마도, 그 축제라는 것이 부
여되더라도 우리는 그럴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기대가 듭니다.
제가 축구를 알겠습니까, 골이 들어가는 것이 통쾌하고, 게다가 이왕이면 잘생긴(^^;) 선수
들이 그라운드를 누비는 모습이 더욱 눈이 즐거운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정말 매혹적인
것은 이 활활 타오르는 분위기입니다.
이 월드컵이, 1년에 1주일이라도, 아니, 4년에 1주일이라도 온 국민이 붉은 옷으로 거리로
뛰쳐나가 즐길 수 있는, 그런 축제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먼 옛날,
그리스에서 억눌린 광기를 발산하는 장이었던 디오니소스 제전과 같이, 우리의 억눌린 마
음을 풀어 헤칠 수 있는. 하지만 아폴론과 아테네의 냉철한 이성을 잃어버리지는 않는. 그
런 축제 문화의 장이. 그것이 우리가 이 최고의 축제를 끝낸 후 생각해야 할 또 하나의 화
두가 될 수 있지는 않을까 감히 생각해 봅니다.
ps) 축구장에 붙여 놓고 싶은 멘트 하나.
"축구장에서는 공만 찹시다. -_-;;;;"
ps2) 플레이 스테이션 2가 아닙니다. 하여간
이 글은 왼쪽 어깨와 오른 손목에 파스를 붙이고 쓰는 글인데
파스냄새에 취해서 글 내용이 삽질화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점 양해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