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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라일락

등록 1999-04-23 07:39:20     조회 941
이름 seha    


        이문세 노래 가사 중에 그런 것이 있던가? '라일락 꽃향기 맡으며'라고 시작
        하던 노래 제목이 광화문 연가이던가? 오우~ 안들은지 너무 오래라서 기억이
        안나네.

        우연이 가져온 기분좋음.

        영화를 무척 좋아한다. 그러나 광이나  매니아는 되지 못한다. 난 도저히 영
        화 감독이나 영화배우 이름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냥 그 때 그 때 보면서 저
        영화는 이러쿵 저러쿵하는 편이다. 이전에는 꽤 신랄하다고 생각하는 영화평
        도 나름대로 적었는데, 귀찮아진지 오래인걸 보면 난 정말 매니아는 아니다.

        찝찝했던 며칠간에 계속 짜증이 누적된게  안되보였던지 덕수궁에 가자는 제
        의를 받았다. 나란 애는 고궁도 참  좋아한다. 그 한적함과 나무냄새 그리고
        소근소근 들려오는 소리, 때때로 화판을 든 시끌벅적함까지도 내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하기에 기분 좋게 볼 수 있다. 한참 회상하는데 스피커에서 When I
        Dream이 나오니 기분 참 묘하네 ^^

        지하철 덕분에 늦게  도착한 시청 앞에서 KFC를 들러 먹고, 지금 생각나는건
        데 일반적으로 늘 내가 먹고 싶다는  것을 먹은 것 같다. 먹다보니 덕수궁은
        늦어버려 덕수궁 돌담길을 걸어갔다.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면 좌측에 가정법
        원이 있어 헤어진다는  내 말에 웃으며 그 이전에는 절대 헤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다고 응수한다.

        조용함, 아주 가끔 다니는 차들, 곳곳의 벤치 축 늘어져나온 가지들, 돌담의
        도돌도돌한 느낌, 그리고 라일락 향기, 나무향기,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의 향
        기.

        '서울이 죄다 이 정도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말에 '그러면 죄다 데이트하는
        사람들이라서 심술나서  안한거지~'라고 농담처럼 말했지만,  그렇게 조용한
        거리 그렇게 조용한 사람들을 나는 늘 만나고 싶다. 현실은 너무 숨가쁘게만
        돌아야하니까.

        정동극장 구석의 찻집은 내가 이전에  보아둔 그대로였고, 또 다시 또각또각
        길을 걸어가면서 사람 생각, 잡다한 사념들 다 버리고 다닐 수 있었다. 왜인
        지 그 느낌은 이전에 남산도서관 고서보관실에서 느낀 그 곰팡이냄새나는 서
        늘함과 같았다. 그 안에서 내가  느꼈던 행복함. 축축하고도 냄새나는 그 책
        들 앞에서 혼자 뿌듯해졌던 그 기억.

        빗나간 우리의 덕수궁행은  그렇게 시작해서 엘리자베스 영화 한편까지 기분
        좋게 이어졌다.

        어차피 인생사는 손바닥 같다고  했던가, 금방 뒤집히고 조금만 다른 각도에
        서 보면 손바닥이 손등처럼 보이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임에도 가지려 욕심
        내어 살아보니 자꾸 잊어버리는 작은  진실들. 이렇게 가끔이나마 여유를 되
        찾으면서 평정심을 가지도록 노력해야겠다. 왜 잊고 살 수 밖에 없었나 아쉬
        워하였던 것들이 멀리 가지 않고  집근처에서 찾을 수 있었다는 것, 내 게으
        름에 대하여 아주 조금 부끄러워해본다.

        간밤의 행복감이 오늘까지도 내게 이어진다.

        오늘 하루 좋은 것만 생각하면서 살기!


- 돌담길, 1999. 4. 23. AM 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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