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수는 고등학생입니다. 내신성적에 중간, 기말고사 말고도 수행평가라는 놈이 왕창 들어
가는 세대이지요. 수행평가..... 작곡을 해 와라, 찰흙으로 뭘 만들어 와라, 수학문제 풀어
라, 아크릴화 그려 와라, 독후감 하루동안 10편 만들어 와라, 깜지 20장 해와라, 뭘 해라, 뭘
해라...... 정말 고등학생들에게 가혹할 정도라는 느낌이 가끔 드는데요. 과연 고등학교 선
생님들께 그 숙제 다 하라고 해도 아마 못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물론 웬수는 전교에서
도 꽤 노는 점수였는데도 1,2지망 학교가 아닌 14지망 학교에 떨어지는 비극을 맞이한 녀석
이고, 그 학교는 수업도 제대로 안 하면서 숙제만 많이 내주기로 유명한 학교라는 점이 또
한 문제이겠습니다만, 어찌 되었건 모르는 사람이 보면 고등학생 불쌍하다는 소리 나오기
딱 좋을 만큼 숙제를 내 줍니다. 학원 다녀오고, 녹화한 교육방송 보고, 독서실 다녀오고
나면 잠 잘 시간도 모자란 고등학생이 어떻게 그 숙제를 다 할 수 있는지, 공부 잘하는 놈
들이 어떻게 숙제도 잘 해 오는지 정말 의심스러운 이런 일.....
비밀이 있었다 아니겠습니까. -_-;;;;;;
시험을 한 과목 보고, 이제 금요일에 레포트 2개 또 내고(시험 봐 놓고도 시험 보자마자 레
포트를 내라는 교수님은 우리를 터미네이터나 뭐 그 비슷한 것으로 보시는 것일지도.....)
다른 과목 시험 하나만 더 보면 지긋지긋한 시험기간에서 탈출하게 되는 혜진이! 며칠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자서 눈 밑이 타래판다 눈같이 거무죽죽 한데다가 피부도 부석부석해져
있어서 별로 인간의 몰골같이 보이지를 않는데요. 그렇게 딱한 모양새로 집에 들어가서 저
녁먹고 잠시 linux@work를 보다가 아주 한심한 포즈로 의자에서 떨어질 듯이 꾸벅꾸벅 졸고
있는 누나를 깨우는 이 웬수 하는 소리라는 것이.
웬수 : "사회 숙제좀 해줘."
혜진 : "누나 죽겠다. 니가 해라."
웬수 : "시험 얼마 안남았어."
혜진 : "난 내일이 시험이야."
웬수 : "그런데 졸고 있어?"
혜진 : "일주일째 거의 못 잤단 말야! 나좀 살려 줘!"
웬수 : "안돼. 내일까지 내야 한다고. 난 독서실도 가야 하고."
혜진 : "언제 내준 숙제인데 이제 해?"
웬수 : "한참 된 거지 뭐..... 조별 숙제인데(!) 우리 조 애들이 안 해서."
혜진 : "나, 참. 다른 애들은 자기 손으로 숙제....."
웬수 : "내 친구들도 누나나 형한테 시키는 놈들 많던데."
혜진 : "난 내손으로 하고 다녔어."
웬수 : "뭐, 과외 선생한테 도와 달라는 놈도 있다더라. 어떤 애는 자기 엄마 카드로 숙제해
주는 사이트에서 다 해결하고." 혜진 : "미친 #. 다른 애들은?"
웬수 : "자기 손으로 하는 애 별로 없어. 아니면 차라리 성적 안 받고 안 내지. 그러면 내신
이 안 나오잖아." 혜진 : "숙제도 자기 손으로 못 하는게 대학은 무....."
웬수 : "그럼 해줄거지? 나 독서실 간다."
세상에....... 도망가 버렸습니다. --+
내 숙제도 피곤해서 못 하는 나한테 숙제를 맡기고 가다니! 이것은 혜진이보다 더 사악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엄마도 또 웬수의 말을 듣고는 들어오셔서 바쁘지 않으면 좀 도와 주
라고 하시는데. --+ 어쩌겠습니까. 일찍 끝내고 쉬던가 해야겠다는 생각 뿐이죠. 인터넷을
뒤져 자료를 긁어 들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또다른 웬수 : "언니. 나 컴좀 써야 해."
혜진 : "이따가 써."
웬수 : "30분이면 돼."
혜진 : "이따가 쓰라니까!"
웬수 : "이따가는 나 피곤해서 자야 한단 말야! 금방 쓰고 줄께. 응?"
혜진 : "난 말이다~ 일주일째 몇 시간이나 잔 줄 아냐! 그런데 지금 내 숙제도 못 하고 이게
무슨 꼴인데 나보고 비키래?! 두시간만 기다려!"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랬더니 집안에서 화내고 소리지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시는 아버
지께서 웬수의 편을 드십니다. --;;;;
아버지 : "왜 동생한테 양보라는 게 없어, 넌!"
왜 앞뒤 사정은 안 들어 보시는 거냐고요..... 아아~~~~~ 비켜주고는 방 구석에 구겨져서 꾸
벅꾸벅 졸았죠...... 30분 후 웬수가 깨우길래 숙제할 자료를 조금 더 긁어서는 숙제를 시작
했습니다.
결국 어제도 새벽 3시에 잤습니다. --+ 독서실 다녀온 웬수는 저보다 1시간 반 먼저 자더군
요. 악착같이 숙제 해 줬습니다. 사진하고 그래프 잔뜩 넣어서 장장 15장! 이 정도면 A는 가
뿐하게 받을 것입니다. 이건 좋았는데, 오늘 아침에 얼굴이 노랗게 뜬 것을 보고 엄마가 깜
짝 놀라시더군요. --;;;;
레포트를 써야 하는데, 자바 코드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 그냥 지금 드는 생각은 잠이
나 잤으면 좋겠다는 것 뿐입니다.
아마 수행평가 때문에 잠 못드는 누나, 형들은 저 말고도 많겠지요. 그러나! 그렇게 도와
줘 봐야 대학 가서는 그 공 싹 잊어 버립니다! 해 줄 필요도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
답니다.
이런 문제가 없어지자면, 천상 말이 되는 학교 숙제를 내 주는 것 만이 방법이겠는데요. 내
준지 10일되는 이런 숙제는 또 할 말 없지만, 오늘 내주고서 내일 걷는다면서 독후감 10편
써와라..... 이런 것은 좀 심하지 않나 싶고. 국어 선생님인들 하룻밤 사이에 독후감 10편은
무리라는 것을 알고 있지 않을까요? 결국 수행평가는 자신의 능력을 검증받는 것 보다는,
숙제를 잘 도와줄 만한 사람을 현명하게 섭외하는 능력을 검증받는 일인 듯 느껴집니다.
누나와 형이 없는 아이들은 어떻게 숙제를 해 가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