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이 밑동네 Nacht 호준이 녀석이 여학생들이 학교에 볼과 고추장 기타
등등을 가지고 가서 밥을 비벼 먹는다는 이야기를 내게서 듣고 기겁을 했던
적이 있다. 정말 묻고 싶은 것은 정말 남학생들은 전혀 안그런가?
우리 시대 바로 이전 세대에서는, 아니 동시대 1,2년 선배들이라도 뗄감 갖
다가 난로 피우면서 학교를 다녔을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 때 중학교 다니던
8촌 오빠에게 듣기로는 노란 철도시락을 꼭 두개씩 가지고 가서는 난로 위에
올려서 누룽지를 만들어 먹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중학교 가면 꼭 하
리라'고 다짐했던 적이 있다. 뭐, 누룽지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문제는 뭐랄
까 중학생 아니면 하지 못할 대단한 특권이라고 당시에는 생각되었기에 그랬
을 것이다. 만일 그런게 아니라면 초등학교 난로불이라고 중학교랑 불의 세
기가 틀려 못했겠는가, 다만 까마득한 선배들의 특권 쯤으로 어린 내 눈에는
비췄었다.
그러나, 중학교에 들어가서 가스난로로 바뀌기 직전 한 두어달을 구형난로를
썼지만 그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니 우리가 만일 멋모르는 새내기
이기 때문에 못했다면 선배들, 그 높게만 보이는 2,3학년 언니들은 최소한
했을텐데 아무도 그런 이가 없었다. 다만, 고구마 구워먹기 정도만..
하지만 여학생들은 남다른 도시락 먹기에 대한 노하우가 있으니, 그게 앞서
이야기한 볼과 고추장을 이용한 방식이다. 남학생들은 볼이 뭔지 알까? 그건
양재기 등의 공 반 짤라놓은 모양의 움푹 패인 그릇을 지칭하는 말이다. 요
새 학생들은 남학생도 가정을 꼭 배우는 것 같던데, 우리 때는 그러면 이상
한 학교 취급을 받아서....
자, 볼과 고추장, 뭔가 연상되는 것이 없을까? 바로 비빔밥 만들어먹기. 처
음 이것은 아주 소극적인 형태로 이루어진다. 뭐 누군가 상치와 고추장을 가
져온다던가, 뭐 그런 식으로.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아주 조직화
된 움직임이 보여 주 또는 월마다 한번씩 서너명이 각자 준비물을 챙겨서 밥
을 비벼먹는 모양을 심심치 않게 교실에서 볼 수 있다. 그것도 절대 반찬을
같은 것으로 가져오지 않게 유의하면서까지 말이다. 밥은 모두가 가져와야
하고, 볼을 가져오는 학생의 경우에는 반찬을 가져오지 않도록 하며-큰 그릇
을 들고 왔다갔다 하는 친구에 대한 배려?!이다- 고추장은 기본이고 물론 참
기름까지 준비하는 치밀함을 보인다. 그러면서 이네들은 '비빌 때마다 틀려
지는 그 깊고 오묘한 맛'에 대하여 극구 칭찬하고 즐거워한다.
기겁하는 남정네가 호준이 말고 또 있을까?
아쉽게도 나는 한번도 학창시절에 그렇게 해 먹어본 적이 없다. '왕따'였기
때문이다. 정말? 정말! 대학까지 10년을 여학교에서 보낸 나는 성격이 괄괄
하고 직선적인 덕분에 몇몇과만 어울렸고, 그 때는 그게 내 눈에 참 '추하게
까지' 보였었다. 그러니 왕따를 안당하고 베겨? :p
극성맞음. 내게는 가끔 조금 모자른 그것을 여학생들은 중,고등학교 시절부
터 갖게 된다. 아줌마로 향하는 길이라고 할까?
그렇게 보면 나는 아줌마가 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 비빔밥과 여학생, 1999. 5. 18. PM 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