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모레가 엄마 생신입니다. 그런데, 내일 저녁때 과연 엄마 선물을 사러
갈 시간이 있을지 없을지 묘연하더군요. 그런데다가, 회사에서 오늘 안에 #$
%#@(뭐, 그런게 있겠죠?)를 해 놓으라는 말까지 들었으니(물론 들어온지 9
일 된 녀석에게 완벽한 것을 바라지는 않겠지만, 제대로 안 하면 아마 남아
서라도 해야 할 것 아니겠어요. ^^) 걱정이 막심했어요. 겨우 퇴근시간 직전
에 해서 냈더니 팀장님 말씀이, 오늘은 그걸 봐줄 여건이 안 되니 일단 먼
저 퇴근해도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이스~~~~~~~ *^^*
뭘 해드릴 지는 생각해 둔 것이 있었습니다. 엄마도 여잔데 화장품을 사다
드리자..... 라는 것이었는데, 제가 아는게 뭐가 있겠어요. 일단, 이대 근처
로 가 보기로 하였습니다. 회사가 홍대 입구 쪽에 있다고 하는데(아직 홍대
에는 안 가봤거든요.) 그냥 이대까지 걷기로 했습니다. 아무래도 화장품은
여자들 물건 쪽에 더 가깝고, 그렇다면 이대 근처에 가는 것이 나을 것이라
는 별난 논리로요. 한마디로 그건 미친 짓이었죠, 아직 구두가 완전히 발에
자리잡은 것이 아닌데. 이대 근처에 왔을 때는 발이 무지 아프더라고요. 날
도 추웠겠다...... 하여간!!!!!!!
<이대 근처에 자리한 모 화장품 가게>
가게 언니 : 뭐 찾으세요?
혜진 : 뭐, 립스틱 아줌마들은 무슨 색 발라요?
가게 언니 : 퍼플이나, 갈색이나 베이지 바르기도 하고.....#$%^@(잘 알아들
을 수 없는 이야기들)
혜진 : .....알았어요, 상자에 있는 색깔 보고 제가 골라 보죠.
막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누드 베이지..... 에 가까운 색을
찾아 내고 말았습니다. 저희 엄마는 워낙 갈색, 베이지. 그 톤만 바르셔서,
좀 특이한 것을 사다 드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하였지만, 하여간 안 바를
물건보다는 바를 것을 사다 드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걸 골라 들었죠. 립스
틱 치고는 좀 길쭉한데..... 싶기는 했는데!!!!!
혜진 : 이 립스틱 얼마예요?
가게 언니 : ......그건 립스틱이 아니라 컨실런데요.
혜진 : ......컨실러요?
뭐, 잡티를 가리는 거라고 설명을 하시더군요. 전에 그런 게 있다고 친구들
이 말하는 것은 들었는데, 명칭과 생긴 모양까지 확실하게 알게 되어 기뻤습
니다.
가게 언니 : 만 팔천원이예요. 화장할때 잡티에 바르면 기미 자리도 안 보이
고 해서 어머니들도 쓰세요.
혜진 : ......그렇군요.
뭐, 생각해 보니 립스틱은 엄마도 갖고 있는 물건 아닙니까. 그러나 컨실러
는 제 평생(?) 구경한 적이 없는 녀석이니, 엄마가 갖고 있는 물건이 아니라
는 거죠. 하여간, 그거 하나 하기에는 좀 빈약한 것 같아서, 뭔가 자그마한
것을 하나 더 할까 하고 화장품 가게 안을 빙빙 돌았습니다. 제가 몰라서 그
렇지, 그 자그마한 화장품 가게 안에는 이름도 못 들어본 희안한 이름의 제
품들이 많기도 하더군요.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세상에는
저렇게 다양한 게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 버렸지요.
가게 언니 : 거기 구석에요, 크림 같은 거 있거든요?
혜진 : 크림이라, 이거요?
가게 언니 : 어머니들 주름 같은 데 바르면 좋거든요?
혜진 : 그런가요.......?
크림만 해도, 이름 들어본 것 부터 한번 들어 보지도 못한 것 까지, 정말 다
양하기 짝이 없게 많이 있었습니다. 한참 뒤지다 보니 뭐, 생약 성분이 들어
가고 어쩌고..... 써 있는 것이 있더군요. 사실은 이름을 어디선가 들어 본
듯한 녀석. 슬쩍 아래에 붙은 가격표를 살펴 보았습니다.
혜진 : 헉......
생약 성분이라더니 산삼 뿌리를 갈아 넣기라도 했냐...... 이건 완전 눈이
튀어나오는 가격이랄까, 그렇더라고요. 물론 화장품을 잘 아시는 분들이라
면 놀라시지 않겠지만, 저는 화장품 가게에 간 일이, 실수로 남자 화장실에
들어간 횟수 정도 될까요? 하여간 그렇다 보니 상당히 놀랐어요!!!!!! 음,
그러면 그 동안에 화장품은? 천냥 백화점이나 세일하는 잡화점 같은 데서 대
충 사서 썼지요.
하여간, 별 것이 다 있었고, 저는 거기 있는 화장품 중에서는 가격이 조금
싼 편이지만 이것저것 다 들었다고 적혀 있는 크림을 하나 들고 나왔습니
다. 그렇죠, 엄마 준다고 사니까나 사 들고 나올 물건이지, 나같으면 내 돈
주고 안 발라! 뭐 그런 거였다면 맞을 거예요. 아아, 이래서 저는 평~~~~
생! 베이비 로션만 바르고 살아야 한다는 비극이 있는 것일지도요.
이왕 화장품 가게라는 곳에 들렀는데 한번 구경이나 해 보자 했더니 신기한
것이 많았어요. 뭐라고 하는 물건인지는 모르지만 물감 튜브같은 것도 있
고, 크레파스 같이 생긴 것도 있고. 솔직히, 화장품이라는 생각보다는 장난
감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거요. 그리고, 음, 대따시(그야말로 구어적인
표현이 극치로군요) 큰!!!!! 붓하고. 이건 전에 잡지에서 봤었죠, 얼굴에 파
우더 칠하는 붓이라고 했는데. 뭐, 우스운 일일 지는 모르지만, 장난감 가게
에 구경 온 것 같았다고나 할까요.
이왕 미친 짓을 한 거, 힘들어 죽겠는데 집 근처까지 지나가는 고속버스 타
고 가자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신촌으로 내려와서는 인천 오는 고속버스를
탔습니다. 따뜻한 난방이 들어오는 고속버스에서 하여간 낯선 종류의 화장품
이 들어 있는 봉투를 어색하게 끌어안고 꾸벅거리며 인천으로 내려왔어요.
도대체 무슨 수로 화장품을 사는 거야? 그렇게 복잡해서야.... 하는 생각이
조금은 들었지만, 화장품 가게라는 곳도 구경하기 재미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정말 딴 세상에 잘못 들어간 것 같아, 길을 잃어버리기는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