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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오랫만에 만난 그녀

등록 2002-03-17 12:41:29     조회 1228
이름 혜진~    

고등학교 때 가까이 지내던 여자 아이를 얼마 전 회사 근처에서 만났습니
다. 만화를 좋아하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하던 전형적인 문과 여자애. 내 자신
에 대한 괴로움으로 단절되어 버렸지만 한때 정말 좋아하던 친구. 그리고 회
사 근처의, 홍익대학교 예술학과에 다니는, 애니메이션 쪽의 일을 하고 싶다
는 녀석.

그동안 만나려고 마음만 먹었다면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학교에서 늦게 돌
아오던 어느 날, 집으로 그 아이의 전화가 걸려 왔다 들었지만 다시 걸지 않
았습니다. 두 번인가 옛날 메일 주소로 메일을 받았지만 답을 돌려 보내지
않았습니다.(뭐, 포워딩을 해 두었으니 받을 수 있었겠죠??) 가장 미쳐서 날
뛰던, 그것도 요즘처럼 미쳐서 일을 해서 뭔가 성과를 내는 것이 아닌, 나
를 파괴하고 주위를 파괴하는 狂의 시간. 내가 멀쩡하게 살아가는 시간과 연
결된 것이 아닌, 미쳐 날뛰던 시간에서 나와의 단절이 이루어진, 내가 미쳐
가는 모습을 하나씩 지켜 본 아이. 그녀를 만나는 것은, 이제 주변을 파괴하
지는 않는, 소위 곱게 미친 제게 큰 문제가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부담스러
웠죠. 사실은, 미친 저와 다시 만나는 것이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 때의
저는 지금 제가 생각해도 "미친 X" 이었으니까요. ^^;;;;;;; (오오~~~~~ 재
활 성공사례인가???? ^^;;;;)

이래서는 안 된다.........

아직 살 날이 살아 온 날보다는 많을 가능성이 높지 않겠습니까. 병이나 자
살이나 사고 등등의 불상사가 생기지 않는다면요. 제게 과거래 봐야 22년인
데, 그 중에서 제 의지가 얼마간이라도 반영된 삶은 10년 조금 넘을 텐데.
그 중에 3년을 갖다가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닐까요. 사진 정리는 사진
정리고, 감정 정리도 끝난 상태라면, 잊어 버리기 보다는, 그냥 무감정하게
받아 들이는 것이 정신 건강상 좋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지금 묻어
두면, 언젠가 곪아 터져 손을 쓸 수 없게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함께
요. 게다가, 그 애는 내가 제대로 살아가게 되면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었다
고 생각했는데.

과.거.청.산........

제가 잠시 좋아했다가 자존심이 긁혀 얼굴도 안 보던 녀석과, 제게 잠시 관
심이 있었다가 저와 맨날 싸우던 녀석들은 지금 제 가장 친한 친구들이 되
어 있습니다. 얘들은 고등학교 3학년 때 화해를 했지요. 문제는 이 아이입니
다. 고 3 1학기 까지도 종종 함께 있었지만, 그녀가 나를 부담스러워 한다
고 느끼는 이상으로 내가 그녀를 부담으로 느꼈던. 그래서, 한 번이라도 다
시 만나야 한다는 강박적인 느낌. 인터넷에 30분간 매달려 검색한 끝에, 녀
석의 전화번호를 발견했습니다. 아주 익숙하게, 바로 1주일 전에도 전화한
것 같이 전화를 걸었습니다. 별로 변하지 않은 낯 익은 목소리.

혜진 : "누.구.게......?"
녀석 : "에, ##? %%? $$?"
혜진 : "뭐냐, 같은 과 친구들이냐? 좀 더 옛날."
녀석 : "아......."
혜진 : "오랫만이다."
녀석 : "어디야? 학교? 집?"
혜진 : "너네 학교에서 걸어서 15분 거리. 취직했거든. 여기 회사다."
녀석 : "밥 같이 먹자. 마침 밥 시간인데."
혜진 : "우린 점심시간 다 끝나간다. 나중에....."
녀석 : "점심 뭐 먹었어?"

......녀석이,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간단하게, 졸업하고 나서 손 한번만 다
시 내밀면 되는 것을, 아니. 내밀어 준 손을 다시 잡기만 하면 되는 것을.

그리고 사흘 정도 지나서, 정말 점심을 함께 했습니다. 홍대 앞에서요.

서로 그 때의 이야기는 한 마디도 안 하면서도, 그 때 좋아하던 만화와 책
에 관한 이야기 만으로도 한 시간을 떠들고 모자랐는데. 무엇을 그렇게 두려
워 했을까요. 예전같지는 않더라도, 단절해 버릴 것은 아무 것도 없었는데
요. 그냥, 그 때의 미친 시간만 잊어 버리면 되는 것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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