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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룬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은데 그저 꼬장만 부리다가 23년이 흘러버렸습니다. 세상에, 20대 중반이래요, 글쎄. 몇년 있으면 저것도 시집갈 테니 돼지저금통 사서 축의금 모아야겠다는 친구놈의 말은 거의 공포일 뿐. 세상에, 사람은 이렇게 나이를 먹고 이렇게 살다가 어느날 꺽 하고 가는 거였습니까? 생일이라고 주변에서는 축하를 해주는데, 아아, 대체 누구 산통을 깨자고 다들 분위기 좋은데다가 "난 두려워요!"라고 말할 수나 있겠습니까. -_-+ 그동안은 나이먹는게 즐거웠죠. 어른이 되어 가는 것 같아서. 지금 이 순간이 지나면 좀 더 나아지겠지 하고 참아왔고 나이가 들어 이 곳을 떠나면 근사하게 살 수 있겠지 하고 버텨왔고 죽고싶은 마음 조금만 참으면 모든 것이 잘 풀릴 줄 알았고 그렇게 10대 후반을 피튀기며 지내고, 대학에 가서 어찌 보면 (전산실에서) 조용하고 행복하게 어찌 보면 (인간관계만은) 막가파같이 요란하게 지내다가 졸업할 때가 되어 취직을 하고 남들 다 살아가는 그대로 줄 따라 오다 보니 20대 중반이라고요? 하느님, 부처님,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옛날에 바랬던 것은 이건 아니었을지도 몰라요. 지금 물론 행복하죠. 백수인 것도 아니고 회사에서 월급을 안 주는 것도 아니며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고 발렌타인이 내일인데 남자친구도 있고 두통 외에는 어디 딱히 아픈 데도 없고요. 이런데 감히 행복한걸까 하고 자문하면 벌 받을 만큼 어찌 보면 조용하고 소박하고 완벽하네요. 예전에 전혀 튀지 않고 조용하게, 그야말로 눈에 띄지 않아서 그 누구도 나를 건드릴 수 없을만큼 조용하게 살고 싶었던 소망에는 가까이 갔는지도 모르겠어요. 생일선물로 도서상품권이 들어왔길래 교보에 가서 책을 고르고 나오던 길에 교보 지하의 핫트랙에 가서 전부터 하나 사고는 싶었는데 좀 비싸다 싶어서 못 사던 패브릭 노트(양장제본이 되어 표지를 천으로 감싼 노트)를 하나 샀습니다. 왜 우울증에 빠진 여자들 중에 쇼핑광이 되는 사람이 있는지 갑자기 이해해 버릴 것 같았습니다. 그래~ 까짓거 만원짜리 노트 하나 갖고 사고싶은데 끙끙 앓을 것 없어. 그 정도는 가끔 사도 될 만큼 돈도 벌고 있다구. 뭐가 문제니. 그렇게 어설프게 마음 속으로 위로랍시고 허세를 떠는 인간, 넌 누구니? 그냥 교보 앞에서, 전부터 사려고 마음먹었던 책과, 노트가 든 종이 봉투를 끌어안고 그냥 펑펑 울고 싶은 기분이었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는데도. 이렇게 나이만 헛먹다가 사라지는 것이 두려워서요. 이게 내가 정말 바라던 것인지 두려워서요. 무엇이라도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너무나 절실한 절망감이 갑자기 쏟아지듯 밀려와서요. 뭐가 되건 학교에 다시 다니기로 했고, 방통대에 편입으로 붙었고, 학보는 어제 배달되었고 내일 모레 안에 학비와 교과서대 고지서가 올 거고요. 망설이고 망설였던 것이지만...... 정말로, 며칠만 버티면 새 학기가 시작된다는 것이 그렇게도 다행스러울 수 없었습니다. 그런 것이라도 없었다면 정말 어떻게 해야 했겠습니까. 절망감에 눌려 가벼운 우울증을 겪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 절망감 조차도 잊어버린 채 조용히 하루하루, 물 속으로 가라앉으면서도 얼마나 가라앉는지 알지도 못하다가 언젠가 바닥에 발이 닿는 순간 숨이 멎을 거라는 어릴 때 꾸고 일어나 눈을 동그랗게 뜨던 그런 꿈처럼 그렇게, 나이나 먹으며 살아가야 할 지도요. 정말로 두렵습니다. 이제 나는 앞으로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과연, 내가 바라던 것에 조금은 더 다가설 수 있을까. 새파랗게 젊은 게 왜 그렇게 땅 파고 있느냐는 엄마 말씀도 맞습니다만...... 그래도 난, 두려워요. 정말로..... ps) 옛~~날에 스물 네살을 거쳐가신 분들께 죄송합니다. 제가 좀 생각이 많은게 불찰은 불찰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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