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부터 저를 보고 있던 시선을 하나 알고 있었습니다. 그 애는 제 가장 친한 친구입
니다. 고등학교 1학년, 늘 저만 보면 괜히 뒤통수라도 치고 가지 않으면 못 견뎌하던, 밥만
먹으면 와서 말싸움을 시키던 녀석이었어요. 별스러운 아이라고 다른 애들이 슬슬 피하는
것도 속상한데, 저런 것까지 들러 붙어서 속 터진다는 생각만 들게 하던. 그 애의 가장 친
한 친구인 또 다른 제 친구는 그 와중에도 늘 싱글벙글, 그래도 말 한 마디라도 살갑게 해
주던 녀석이었어요. 쥐약 먹지 않은 이상 누가 더 인간성 좋아 보이겠어요? 속 터지게 힘들
고 외롭고, 그래서 그 말 한 마디라도 살갑던 녀석에게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
애는 안 된다고만 말했습니다. 그 때는 알지 못했어요. 지금도, 계속 친구로 남아 있는 것
은, 그 애는 나를 그런 마음으로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남자 애들과는
달리 여자 애들은, 시간이 지나면 혹은 다른 인연을 만나면 예전의 풋사랑 같은 마음은 쉬
이 추억으로 만들어 버리고 반쯤 잊어버리기도 하니까요. 대부분은요.
그, 늘 싸움만 걸던 녀석이 조금은 인간같이 느껴 진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였습니다. 저
를 죽어라 쫓아다니던(으으, 이렇게 써 나가니 마치 "헨리 8세와 그의 여인들"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는.....?) 문과 녀석에게 "너랑 나랑 둘이 같이 있으면 사이코라는 소리를 두 배 이
상으로 듣게 되는데 우린 따로 노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는 식의 무식한 소리를 해 놓은
후에. 그래도 저를 가끔씩 두근거리게 하던, 성적도 꽤 우수하고 운동신경도 좋은 편인데
다, 남의 책상에다가 말하기 민망한 닭살느끼 낙서를 하고 가고, 겨울 크리스마스 카드를
살짝 쥐어주던 선배가 졸업한 그 후에. (그러나 그 선배 졸업하기 전에는 "저거 언제 졸업
하나~~~~~"하고 기원 축수를 드리던 것도 사실이죠. 그게 두근거리는 거였던가? 하고 느낀
것이 한참 후였으니까.)
하여간 위에 말한 인물들이 차례로 정리된 후에, 이 녀석은 때때로 속이 안 좋다고 인상을
쓰고 다니면 까스명수를, 졸려서 늘어지는 여름날에는 박카스를 권하기도 했어요. 물론 저
는 "너같이 변태같은 새끼는 정숙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율무차를 마시는 게 딱이지."하
고 기껏 인심 쓴다는 것이 율무차 등등을 뽑아다 주기는 했습니다만. 물론 1학년때의 그 친
구에 대한 어색함을 잊어버린 것이 이 때 쯤이었어요. 이후에는, 그냥 친구일 수 있었으니
까.
그 시선을 처음 느낀 것이 이 때였지요. 그런 시선으로 계속 봐 왔던 걸까 하고. 하지만, 그
애는 늘 그렇게 말했어요.
그 넘 : "내 눈이 삐었냐? 너 같은 게 기집애로 보이게. 난 쭉쭉빵빵하고..... 아, 맞다. 너 같
은 절벽은 사절이란다." 혜진 : "죽어랏!!!!!!!!!!!!!!!!!!!!!!!!!!!!!!!!!!!"
남자들은 말로 들어야 아는 것도, 여자들은 그냥 알기도 합니다. 그 애가 그냥 그렇게 넘기
는 것이 사실은 계속 바라보고 있는 것이라고, 계속 알고 느끼고 있었지만 그냥 모르는 척
했습니다. 때 되면 잊어 지겠지. 때 되면 그런 마음도 사라지겠지. 그냥 친구로만 보아 줄
날이 오겠지. 저 녀석이 자기 마음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그냥 친구로만 바라보는
날이 오겠지. 그렇게 기다렸습니다. 기다리면서, 그 녀석도 저도 각자 수능 점수 나오는 대
로 대학에 갔고, 저는 입학하자마자 어리숙하게도
+ 리눅스 가르쳐 준다는 꾐에 빠져 세
이와 어울리다가, 이 비리비리한 선배가 내가 바라보는 시선과 같은 종류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녀석은, 잘 다니던 학교를 때려치우고
인천으로 돌아와, 재수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재수해서 한양대에 가볍게 붙은 녀석은 1학기를 겨우 다녀 주고는 출가하여 방황의 인생을
살다가, 군대 가기 한달 전에 집으로 제발로 들어왔습니다. 걔네 어머니가 용하시지요. 저
같으면 저런 아들 둘둘 묶어다가 튜브 하나 매달아서 인천 앞바다에 갖다 버리고 말 것 같
은데 말입니다.
+ 하여간 이 녀석은 군대에 갔고, 저는 생일때 작은 것이라도 보내 주고,
휴가 나오면 점심 사주고. 그렇게 지냈어요. 그리도 녀석은 제대를 했습니다.
졸업을 하고 뭐가 되었건 직장도 다니고 하는 저.
그리고 대학 1학년 1학기 중퇴 상태로 군대만 다녀온 그 녀석.
군대 다녀 오고 4학년 1학기 들어가는 세이.
물론 취직하고 처음에 어리버리 해서, 연락을 자주 못한 점도 있을 겁니다. 자기는 지금 아
무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친구인 저는 이미 졸업도 하고 취직도 하고 나름대로 조금은 안정
적이 된 것 같아서 속이 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녀석에게 가장 힘든 것은 아마도, 세
이와 함께 있는 제 모습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잊어 버리기를, 묻어 버리기를 그렇게 바래
도 사람 마음은 마음대로 될 수 없는 것이니까, 다른 여자친구가 생기기를, 나는 그냥 친구
로만 봐 주기를 그렇게 바랬는데, 녀석에게는 마땅한 참한 여자친구도 잘 나타나 주지 않
았습니다. 이 녀석이 워낙 건달같이 만나고 헤어지니까요.
+
녀석의 메일이 왔습니다. 그동안 말하지 않았던 그 애의 마음은 대놓고 좋아합네 사랑합네
그런 말로 적혀 있지는 않았습니다만, 네. 그렇게는 적혀 있었습니다. 저한테 연락할 때
마다, 자기는 첫 사랑에게 연락하는 것만 같다고. 언젠가 제가 결혼하고 나면, 그 후에는
아마 자기는 다시는 저를 볼 수 없을 것 같다고. 기타 등등.....
컴책상을 마치 인테그라 사마가 아카드 전화받고 환장하는 것 같이 꽝 하고 내려쳤습니다.
혜진 : "어쩌다가 사내자식들은 가비지 콜렉션도 안 되게 만들어져 있는 거야? 이런 무지막
지 비효율적 막가파식 사람 뒤집어놓는 녀석이 어디 있어?"
왜 그 때 말하지 않았을까요.
왜 세이를 만나기 전에 잡지 않았을까요.
그렇지 않았더라도, 왜 조금이라도 더 자기 생활을 소중히 하지 않았을까요.
어째서 내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의 상처가 되야 하는 것일까요.
뻔히 보이는 말을 입 밖으로 절대 꺼내지 않고 꽁하니 있다가, 이제 와서 저렇게 말하는 친
구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내 이기심으로는 잡아다가 8kg 이상 채운 책가방으로
두들겨 패 주고 싶은 마음 뿐입니다. 그 애가 일찍 말을 해 주었더라면 어쩌면 조금은 달라
졌을 지도 모르는 것을(시간을 돌이키더라도, 아마 세이를 만난 이상은 그 애에게 홀렸
겠지만).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8년 묵은 친구 사이가 파국으로 달려갈
일은 없을 것을. 녀석을 놓아 버릴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는. 어째서 녀석은 저를 이런 상
황 속에 빠뜨려 버린 것일까요. 가장 친한 친구라면서. "농담이건 진담이건 사랑한다"라고
말했으면서.
왜 남자들은 사랑에 대한 "가비지 콜렉션"이 잘 안되는 것일까요.
모 양의 말대로, 진화가 덜 되어서일까요.....
+
ps) 다시 읽어보니, 좋아한다고 말했던 친구, 가장 친한 친구, 세이, 쫓아다니던 문과의 괴
문학청년
, 느끼에 빛나던 1년 위의 선배. 정말 무슨 남자 콜렉션 같은 글이기는 합니다만
. 이 중에 남자애라고 좋아한 것은 많아야 둘, 아마도 하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