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포에닉스라는 만화책의 뒤에는 "휘페리온 브리지" 라는 4컷 만화가 있는데요, 거기에
보면 "선데이 아카이아"라는 잡지가 1컷 등장합니다. 그 잡지가 등장했을때 다들 웃었지요.
.... 언젠가 릴레이로 쓰던 팬픽에서 제가 등장시켰으며, 지금 쓰고 있는 팬픽의 앞부분에
서도 등장하고 있는 그 잡지는 지금 저와 같은 팬 중 한 분의 홈페이지에서 다시 패러디되
어 "먼데이 아카이아"라는 이름으로 소식지의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일이죠, 팬
픽이 다시 원작 만화의 서비스 컷에 옵션으로 들어가, 원작의 일부가 되어 버리는 것은. 그
런 것도 일종의 피드백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팬픽은 저의 많은 취미 중 하나이며, 그 중에서도 상당히 즐거운 일입니다. 일단 원고 마감
도 없으며, 주인공을 설정하여 짠~ 하고 보여주기 위해 머리를 짜내지 않아도 좋으니까요.
마감 이야기 나왔으니 말인데, 예전에 모바일용 연애시뮬 게임 시나리오 쓰는데, 마감날은
다가오는데 10명의 스토리가 다 풀려 주지는 않고, 날은 춥고..... 밤새서 글을 쓰다가 마감
을 이틀 남기고 글이 갑자기 술술 풀려 주는 바람에 겨우 마감을 맞췄던 기억이 있습니다
만, 야아, 정말 스트레스 받을 일이었지요. 하여간에 그 이야기는 접어두고. 만화를 읽다가
보면, 이 이야기와 저 이야기 사이에는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라던가, 주인공의 성장
중 일부가 드러나지 않았을 때 궁금해 하는 경우가 있게 됩니다. 예컨대, 베르사이유의 장
미라는 만화/애니메이션의 팬들은, 오스칼과 앙드레의 어린 시절과, 오스칼의 사관학교 시
절을 소재로 하여 팬픽을 쓰는 분들이 꽤 많이 계시더군요. 아아, 그 중에서도 "푸른 눈의
아기고양이" 라는 팬픽은 상당히 멋진 것이었는데, 기회가 되시면 읽어 보세요. 오스칼의
강한 자존심과, 앙드레의 따스함이 멋지게 어우러진 소설이던데.
김진 선생님의 작품 중에, 레모네이드 시리즈라는 것이 있습니다. 한 가족의 이야기인데...
.. "레모네이드 처럼", "모카 커피 마시기", "SOS, I Love You", "노랑나비 같이"의 시리즈물과 몇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만화입니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 현우도 이제 복학생의 모습이
되었을 나이겠네요. 또 다른 주인공급의 발측한 아기 표독이=현우의 조카도 중학생이 되었
을 것이고요. 아기 이름이 표독이라니, 하여간..... 지금 써 보고 싶은 것은 그 뒷이야기, 현
우는 제대를 하고, 표독이는 중학교에서 치이고 있고, 원작에는 없었던 표독이의 여동생을
등장시키는 이야기를..... 그런데 문제는..... 선생님께서도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레모네
이드 시리즈의 뒷 이야기를 또 그려 볼 지도 모르겠다."고 하셨기 때문에 일단 보류.....
중학교 때의 꿈은, 그 때는 단어도 생경했던 만화 스토리 작가였습니다. 작화와 스토리가
한 사람의 머릿 속에서 나오는 것이 그 때 까지의 대부분의 우리 나라 만화였으며, 순정에
서는 거의 100%였던 현실에서 스토리 작가가 되고 싶었던 꿈은, 지금은 컴퓨터에 느낀 매력
으로 인해 많이 옅어졌지만, 아마도 나이가 들어도, 팬픽을 쓰는 그 취미만은 버릴 수 없게
될 것 같습니다. 그것은 제가 정말 잘 할 수 있고 좋아하는 취미이며, 한때 가졌던 열망의
흔적이고 제가 사랑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쓰던 팬픽 시리즈
의 다음 이야기를 노트에 끄적거리며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내 주인공이 종횡무진 우주를 누비며
자유롭게 자신의 뜻을 말하게 하고 싶어.
더러운 역사의 흐름이라는 것 앞에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살아가며
음해하고 질투하는 모든 더러운 모습 앞에서,
그저 타협이나 어떤 것이 없이
차라리 모든 세상과 싸우는 모습을 보고 싶어.
내 주인공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자존심에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아주 강하고 악착같은 아이들.....
만화의 주인공은,
자기가 가장 되고 싶은 모습이나
혹은 자기의 가장 좋은 모습을 닮는다던데.
연습장에 빼곡히 그려지는 콘티들
아마도 결코, 작화가 되지 않은 채
그저 텍스트 파일로 바뀌어 동호회의 게시판에 올라갈
나의 주인공들은 무엇을 닮은 것일까.
그런 악착같은 아이들의 모습을 쓰다가도
그저 행복하고 나른해야 할 것 같은 토요일 오후에는
티백 홍차나 코코아와 함께 달콤한 팬픽을 쓰지
내가 정말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생님의
멋지고 다정한 주인공을
그 주인공들의 슬픈 사랑 이야기에는
어쩌면 행복했을 지 모를 뒷이야기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사랑을 몰래 엿본 것 처럼
토요일 오후에는 행복한 팬픽을 쓰지.
그런 글에는 꼭 달콤한 이야기만 넣고 싶을 거야.
그 주인공은 나의 아이들이 아닌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의 아이들이니까 말이야.
그런 글을 쓰고 나면 행복해져서
짧은 낮잠 속에서도 행복한 이야기.
무척이나 바쁜 날은 잊을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한 시간, 아니, 두 시간의 여유만 있다면
나는 다음 토요일에도 팬픽을 쓰고 싶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