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저는, 학교 뒤 푸세식 화장실에서 귀신을 만났다고 생각합니
다. 그놈의 학교는, 연희동까지는 수도가 들어왔는데 이 동네는 수도가 안
들어 왔다면서, 심심하면 수세식을 폐쇄해 버렸거든요. 즉.... 야자하다가
밤 11시에 푸세식 화장실로.... 생각만 해도 유쾌한 일은 아닙니다만. 어느
고등학교인들 사람 하나 안 죽은 학교 있겠습니까. 한참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던 제 앞에 나타난 것은, 허공에 떠 있던 단발머리 여학생이었습니다.
(를 보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놀라서 쥐고 있던 휴지를 봉투째 던
졌지만, 휴지는 그 화장실 문에 맞고 떨어졌으며, 그녀는 눈 앞에서 사라져
버렸지요. 어쩌면 귀신이었을 것이고, 어쩌면 저의 환상이었을 지도 모르겠
습니다만, 하여간 그 허깨비를 본 후로 저는 며칠을 악몽을 꾸다가 신경 안
정제를 구입할 결심을 했었습니다. 뭐, 신경안정제 쪽이 악몽보다 나빴다는
것은 그 후에 안 노릇이지만. 하여간에!
많은 분들이 그리 말씀하시지요. 기가 허하면 허깨비가 보인다고요.
기가 허하다는 것은 체력적으로나 혹은 정신적으로 무리를 하여 너덜너덜~
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참 입시 스트레스와 다른 아이
들의 따돌림으로 정신적으로 무리가 컸던 상황에서, 허깨비를 본 것은 어쩌
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듭니다만. 어쩌면, 그렇게 힘들다고 죽
어 버리면 저렇게 학교를 떠도는 귀신이 될 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었던 것도 그때였습니다. 허깨비가 사람을 살린 것일까요, 아니면 살고 싶다
는 마음이 더 컸던 것일까요.
그런데......
문제는 대학에 와서도 피곤하면 이상한 게 휙휙 지나가더라는 거죠. 예컨
대, 분명히 앞에서 누가 내 옆을 스치고 지나갔는데, 순간 오싹해서 뒤를 돌
아보면 없다던가. --+ 예, 비록 학점은 엄청나게 좋은 편이 아니지만, 이것
저것 찾아서 공부하느라고 바쁜 것도 사실이며, 밤새 공부는 안 해도 책은
하루에도 몇권씩 보고 하느라고 잠 모자라 체력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죠. 아
르바이트 때문에 신경 쓰이는 때도 분명 있을 것이고요. 그러니 역시 "기가
허해서 허깨비가 왔다갔다 하나 보나......" 하고 있었죠. 그냥 그런 게 눈
앞에 슥 스치고 지나가도 "또 지나가네. 이번 일만 끝나면 잠 좀 자야 겠
군." 하고 지내고 있었습니다.
어제는 시험이 2과목..... 조금 피곤했답니다. 시험을 보고 밤이 늦어서(안
늦어도 알아서 따라오지만) 오딧세이가 집 앞까지 바래다 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오싹 하면서 웬 아저씨가 가방을 끌어안고 슥 지나가네요. 뒤
를 돌아 보았을 때 그 아저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답니다.
혜진 : "또 허깨비인가 보네..... 사람이 지나간 줄 알았는데 없어."
그랬더니 오딧세이가 정색을 하고 말합니다. 너무나 심각하게 말이죠......
오딧세이 : "아냐, 사람이야."
혜진 : "뭐야, 없다니까."
오딧세이 : "사람은 사람인데, 돌아가셔서 몸이 없는 분..... 그러니까, 귀
신이라고 불리는 분들 있잖아. 가끔 피곤하고 그럴 때 말야, 아무렇지도 않
은 데 오싹할 때 있거든. 그게, 그런 분들이 지나가면 말이지....."
혜진 : "혹시 좀 전에..... 오빠도.....?"
오딧세이 : "좀 전에 약간 오싹하던데 말야......"
....라는 말은,
귀신일 수도 있다는 말이네......
오싹........
이 웬수는 왜 이렇게 깜깜한 밤에 이런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하는 거냐고
요! 게다가 병 주고 약 주느라고 하는 말이.....
오딧세이 : "괜찮아. 귀신은 사람에게 해 끼치지 못한대~~~"
아~아~아~아~
그냥 허깨비려니 하고 있을 때는 하나도 무섭지 않았는데. 귀신이니 어쩌니
하고 말을 하니까, 환하게 불 켜진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기가 그
렇게 무서울 수가 없는 거예요. 훌쩍...... 나빴어......
언제 어둑~ 한 곳에서 머리카락을 휙~ 풀어헤치고는 그래야 겠습니다.
"내가 아직도 혜진이로 보이니~~~~~~~~~"
식칼까지 무는 편이 좋을까요...... 에구구.